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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쁜 하나님
2026-05-10 04:47:59
문희종
조회수   25

jtbc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있다"이 문장 분위기에는 “강해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보다 조용히 버티며 자기 안의 흔들림과 싸우는 모습이 보이는드라마 입니다.

내가 떠올린 나의 모습은 이런 느낌입니다.

새벽이나 밤, 불 꺼진 방에서 조용히 성경을 펼쳐놓은 모습

피곤하고 지친 얼굴인데도 눈빛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표정

화려한 정장보다 약간 헐렁한 셔츠나 검은 코트 낡은 청바지의모습

사람들 앞에서 웃지만 혼자 있을 땐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

산책길 벤치나 나무 아래에서 하늘 올려다보는 장면

“나는 괜찮다”보다 “그래도 버틴다”에 가까운 분위기가 나의 모습입니다.

특히 이 문장에는

완벽한 성공자의 얼굴보다 상처와 고민이 있는데도 끝까지 자기 가치를 놓지 않으려는 주인공의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드라마이 입니다.

그리고 나도 황동만 주인공처럼  돈·믿음·외로움·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사람에게 받은 상처 사이에서 계속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너무 밝고인위적인 모습 보다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분위기가 더 자연스럽게 맞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속 내용들 대사를 한 장면으로 표현하면어두운 배경 속에서 고개는 약간 숙였지만 눈은 살아 있는 사람, 무너지지 않으려고 자기 존재의 가치를 붙들고 있는 모습이 드라마속 주인공 황동만의 모습이 나의 드라마 입니다.

황동만을 보면서 어느 정도는 나를 충분히 느껴집니다.

드라마 속 대화에서 계속 내가 보입니다. 드라마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가겉으로는 투자 이야기나 세상 이야기 많이 하지만,그 안에는 늘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존재인가”

“왜 이렇게 상처와 외로움이 깊을까” 같은 질문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장도 단순한 자기 계발 문구보다 나에게는 꽤 실제적인 싸움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자기 가치와 싸우는 사람은 아직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관심해진 사람은 그런 문장에도 반응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내가 보는 나는 계속 의미를 찾고,붙들려고 하고 무너지지 않으려는 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게 지금의 문희종 분위기 같습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면 말보다 분위기로 느껴지는게 있거든요.

문희종은 완전히 가벼운 사람도 아니고 완전히 냉소적인 사람도 아닌데 상처도 깊고 생각도 많은데,또 한편으론 끝까지 뭔가를 붙들고 살아가려는 힘이 있어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 드라마 문장과 참 잘 어울리는 나를 주제로 한 드라마 같습니다.

약한 척도 강한 척도 아닌,“오늘도 버틴다”는 느낌의 나 자신을 봅니다. 오늘도 버틴다는 그 질문은 단순히 “힘들다”보다 더 깊은 느낌이 있는

“계속 이렇게 살아내기만 해야 하나?” 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 버틴다는 게 꼭 억지로 이를 악물고 사는 것만 뜻하진 않는 것 같아요.

어떤 시기에는 버티는 게 회복으로 가는 과정이기도 하거든요

특히 사람은 계속 긴장과 상처 속에 오래 있으면

삶 자체가 “생존 모드”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 상태에서는 기쁨도 희미하고, 미래도 잘 안 보이고,“언제 끝나지?”라는 생각이 자주 올라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늘 강한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엘리야도 지쳐서 쓰러졌고, 다윗도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신다고 했고, 욥은 삶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했지요

중요한 건 “안 힘든 척”이 아니라 그 상태에서도 완전히 끈을 놓지 않는 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의 나는 완전히 꺼진 사람의 말투는 아닙니다. 여전히 질문하고, 웃고, 의미를 찾고, 대화하려고 합니다.

그건 마음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으려는 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것입니다.

오늘은 “언제까지 버텨야 하지?” 대신 “오늘 하루만 너무 무너지지 말자” 황동만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너무 괜찮은 녀석인데 하면서 자기 얼굴낯을 두드리는 모습에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냥 멋있는 대사가 아니라, 주인공의 “찌질함과 버팀”까지 함께 같이 보입니다.

이런 류의 드라마는 이상하게도 편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듯합니다.

특히 꿈은 큰데 현실은 초라하고, 자존심 때문에 강한 척은 하는데 속은 무너져 있는 인물들…

웃기면서도 너무 인간적이라 마음이 끌립니다. 그리고 내가 말한 포인트가 되게 솔직합니다.

“멋져 보여서 공감”이 아니라“뻔뻔함 속에서 찌질함 속에서 내 모습이 보여 웃깁니다”

그건 나라는 나 자신을 꽤 냉정하게 보는 시선이기도 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모습보다 그런 “애매하게 흔들리는 인간”에 더 공감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실제 삶은 대부분 대단한 승리 보다 버티기·허세· 후회·희망 이런 것들이 섞여 있으니까요

근데 나는 지금 그걸 비웃기만 하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도 내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게 그냥 냉소만 남은 상태와는 또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왠지 나는 그 주인공 황동만을 보면서 속으로 이런 마음도 조금 들었을 것 같습니다

“야… 그래도 끝까지 포기 안 했네.”

그런 캐릭터들은 완벽해서 기억나는 게 아니라 망가지면서도 계속 살아가는모습 속에서오래남거든요. 드라마대사 중“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감정 덩어리들을 본다"그 말이 왜 깊게 들어옵니다.

살다 보면 사람 얼굴 뒤에 있는 감정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가 있거든요

억지웃음, 외로움, 초조함, 체념, 허세, 불안… 겉은 멀쩡해도 다들 자기 싸움 안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도 단순 재미보다 “인간을 너무 진짜 처럼 보여줘서”인 것 같아요.

특히 나처럼 사람에게 상처도 받아봤고, 자신과오래싸워봤고, 외로움과 실패감도 느껴본 사람은 그런 대사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단순한 이야기로 안 들리고 “아… 맞아…” 하고 자기 안을 건드리니까요

“감정이 아니라 감동”이라는 대사중 나 스스로 감정은 순간 흔들릴 수도 있지만,감동은 마음 깊은 데 닿을 때 나오거든요.

오랫동안 굳어 있던 안쪽을 건드릴 때.

그래서 어쩌면 이 드라마가 나에게 주는 건 단순 오락보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거울, 인간에 대한 연민, 그리고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같은 느낌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64세에 처음으로 내자신이TV드라마에 이렇게 빠졌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아마 지금의 나의 마음 상태와 이 작품의 결이 묘하게 맞아 들어간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 찍은 나의 드라마.

지난2년간 싸워온 소송 재판 실패 속에 나의참담한 모습을 독한술에 몸담군 나의 그 장면이 참 인간적일까요?

하나님 그분을 원망하고, 비꼬고, 울고… 그런데 또 기도하고,심지어 내 식도 깊은곳에서 감사가 나온다는 게 말입니다

신앙이라는 게 늘 정돈된 감정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 속의 사람들도 하나님께 왜 이러시냐고 따지고, 억울하다고 울고, 침묵하신다고 원망하고,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 못하고 다시 하나님 쪽으로 말이 향합니다. 하나님과 말다툼 합니다.

어제 나의 모습도 약간 그런 느낌입니다.

특히 나의 표현중 “내 감정과 상관없이 감사합니다가 나오더라.” 그건 억지긍정 이라기보다,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아직 하나님과 끈이 남아 있다는 느낌 같아요

그리고 내가 그 순간 웃었다는 것도 뇌 속에 남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 안의 모순을 발견하면 더 굳어지는데, 나는 “나 원망했잖아” “근데 또 감사가 나오네?” 하고 내 모습을 보며 웃은 거는 어쩌면 그 웃음 속에는 “하나님도 참 나쁜 분이신데 또 나를 포기안하시는구나”  같은 감정도 조금 섞여 있나 봅니다.

다윗의 시편 13편 보면 이 한 편 안에서 원망하다가 갑자기 찬양으로 넘어가고, 다시 두려워하고, 또 감사하거든요.

인간 마음이 원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술 취한 상태에서도 기도로 향했다는 건 내 안의 오래된 신앙의 길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 같습니다. 시편 13편 정말 지금 내 마음과 닿아 있는 듯합니다.

특히 시작은 거의 절규에 가깝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그건 믿음 없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너무 솔직한 사람의 기도입니다.

숨기지 않고 그대로 쏟아내는 거니까. 그런데 신기한 건 시편 13편 끝부분입니다

상황이 갑자기 해결된 것도 아닌데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 하였사 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기뻐하리이다…”로 넘넘갑니다.

논리적으로는 잘 설명 안되지만 아직 힘든데, 또 하나님께 기대고 있구나.

어제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도 감사기도가 나온 것처럼.

그래서 어쩌면 내가 웃었던 건 내 모습 내 안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그 신앙의 움직임을 본 순간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시편은 “완벽한 믿음의 언어”라기보다흔들리는 인간이 하나님께 끝내 말을 거는 책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실 성경의 사람들도 하나님께 그런 복잡한 감정을 많이 드러 냅니다

왜 이렇게 침묵하시냐고 하고,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드냐고 따지고, 때로는 너무 가혹 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완전히 떠나진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미워하면서도 결국 다시 하나님께 말 걸게 되니까.

어쩌면 내가 “참 나쁜 하나님”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도 완전한 불신 이라기 보다 “왜 이렇게 나를 그냥 안 놔두시냐…” 같은 마음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리고 어제 내 이야기처럼 원망 하다가도 감사가 나오고,술취했는데도 기도하게 되는 모습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 같기도 하네요.

야곱도 하나님과 씨름했고,

욥도 하나님께 따졌고,

예레미야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기도도 끊어버리지 않으셨지요.

아마 하나님과 오래 걸어간 사람들의 믿음은 항상 반듯한 모범답안 이라기보다, 사랑·원망·눈물·감사·분노가 다 섞여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 보입니다.

오늘도 나는 지금도 하나님께 말 걸기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골방에서 엄마사진을 보면서 한참을 울다가 하나님께 말을 걸어봅니다.

욥의 정답 같은 믿음을 보면서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말을 겁니다.

하나님에게 시비를 겁니다. 투정하고 원망하고 비웃기도하고 욕설에 가까운 막말도 서슴없이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무릎 꿇고 있더이다.

나는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하고있더라고. 나의 인간적인 절규와 끈질김 속에서 더 마음이 갑니다. 이게 인간의 모습 인가 생각합니다.

나쁜하나님이 오늘도 나에게 말걸기의 끈을 끈질기게 역고 있습니다.

무너질 만큼 무너지고 울만큼 울고 따질 만큼 따졌지만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와의 관계 를 끊지않습니다.

하나님이나 나나 참 끈질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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